“학생들은 책을 통해 수학지식들을 소설을 읽듯 역사 발생적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1990년 6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 방문했던 지인의 집에서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돌이 겨우 지난 아기가 한 명 있었다. 그 댁 거실과 아기방엔 화려한 전집류와 교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공이 수학인지라 가격을 알고 있던 값비싼 수학교구 세트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즈음 수학과목이 무리한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을 마주하며, 그 때나 지금이나 자녀가 수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을 값비싼 교구나 사교육이 아닌 방법으로 충족시켜 드릴 수 없을까 고민해 본다.
수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수와 연산의 반복이나 수식, 도형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수학이라는 넓은 세계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수학은 계산만 반복하고 공식을 외워서 해결해 가야하는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학문이다. 수학을 잘 한다거나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수학하면서 생각하고 수학적인 풍부한 의미를 공유하고 생성하는 과정이다.
최근 수학교육계에서는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수학 독서’를 권하고 있다. 독서하면서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수학에 대한 생각과 수학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말한다. 단지 재미있는 상황에서 학습해 효과를 보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일차적으로는 출판사나 교육청의 학년별 권장도서를 검토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느 특정한 학년의 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읽는 이 혹은 읽히고자 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수학 관련 책은 수학사, 수학소설, 수학자, 수학 에세이 등으로 분류된다. 위대한 수학자를 다루거나 수학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은 후 쓴 학생들의 독후감상문은 한결같다.
“수학 이론이나 증명은 천재수학자들이 어느 날 문득 발견한 것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수학자들의 노고와 실패가 모여 완성된 작품이란 것은 처음 알았어요.”
지금은 완벽한 이론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수학공식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수학자의 인간적인 모습에 흥미가 생겼다는 내용들도 많다. 학생들은 수학자의 삶을 통해 결과만큼이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고 추측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론들이 파생돼 수학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책을 통해 수학 지식들을 소설을 읽듯 역사발생적인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수학 공부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룬 수학 에세이를, 친구들과 토론을 펼치고 싶다면 사건과 등장인물, 갈등이 있는 수학 소설을, 수학에 호기심이 많다면 사전식으로 수학 지식들을 담은 책을, 수리논술을 지도하는 교사에게는 통계와 확률을 다룬 책이나 수학 소설, 수학사 같은 책을 추천하고 싶다.
최근 소개되고 있는 수학 관련 도서들은 수학 개념을 요약한 책이나 만화로 구성된 학습만화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수학적 정보를 급히 먹으려는 독서는 수학 학습에 도움을 주기보단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 데 그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수학 독서도‘여유있게’라는 구호가 필요한 때다.
끝으로 수학책을 통해 동서고금의 지혜를 맛보고 올바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책을 매개로 타인과 의사소통 할 것을 권한다. 의사소통의 방법이 어른들과의 대화든, 독후감상문이든, 수리논술이든, 토론활동이든, 독서기록장 기록이든 간에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나누려는 자세가 있어야만 다음 책을 더욱 의미 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인선 한국교원대 교수·수학교육과